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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완 교수의 연구실은 10여대의 모니터와 컴퓨터, 책·자료로 가득하다. 두 사람이 들어서니 비좁게 느껴졌다. 임현동 기자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종이접기를 시키겠습니다.”

양자역학 권위자인 김재완(63)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는 “종이접기는 아이들 놀이로 보이겠지만 그 속에 수학적 요소가 담겨있을 뿐 아니라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등과학원 부원장이기도 한 김 교수를 최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나 양자 역학과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는 쪼개지 못하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인 ‘양자’(量子·quantum)를 연구하게 된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1976년 12월 그는 논술 공부를 위해 신문을 읽다 ‘양자역학 50돌…뉴튼 역학 뒤엎다’는 중앙일보 기사를 접하게 됐다.

“학교에서 양자물리학을 조금 배우는데, 그때 불확정성 원리를 듣게 됐다. 똑같은 조건에서 총을 쏜다고 생각해 보자. 뉴턴의 고전역학에 따르면 똑같은 자리에 총알이 박혀야 한다. 운명론처럼. 근데, 양자물리학은 그게 아니라는 거다. 똑같은 조건에서도 다른 데 맞을 수 있다. 그건 인간의 ‘자유의지’랑 연관이 있는 거다.” 그는 그 길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길을 바꿔놓은 그 신문기사를 지금도 연구실에 붙여놓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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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에는 1976년 12월16일자 중앙일보 ‘양자역학 50돌...뉴튼역학 뒤엎다’는 기사가 붙어 있다. 그를 양자역학의 세계로 이끈 기사라고 했다. 임현동 기자

김 교수는 “우리 주변의 것들엔 양자물리학이 있다”고 했다. 예컨대 눈으로 보는 것도 양자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빛 알갱이가 인간의 망막을 거치면서 분자 구조가 변해 신경세포를 때린다. 광합성, 플라스틱 합성, 정보통신과 반도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양자물리학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기존 컴퓨터로 풀 수 없었던 불가능한 문제를 풀고, 영화 ‘어벤저스’에 나온 시간 이동 역시 양자 텔레포테이션으로 가능해진다고 했다.

그는 “양자물리학은 자연현상에 관한 것으로 자연에 관한 일상 경험이 필요하다”며 요즘 교육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놀 공간과 시간이 부족하단 것이다.

“어렸을 때 집이 시장통 근처에 있었다. 용접하는 것, 물건 파는 걸 자주 구경했다. 집에 광이 있었는데 거기에 톱·망치 등 온갖 것들이 다 있었다. 나뭇조각을 주워다 그걸로 배도 만들었다. 근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걸 못해보고 크는 게 너무 안타깝다.” 그는 “경험이 없는 추상적인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도 부모세대가 시장통, 광에서 했던 많은 일상의 경험, 자연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진짜 천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종이접기를 시키겠다”라고도 말했다. 종이접기는 아이들의 놀이로 보이겠지만 그 속에 수학적인 것들이 담겨있다고 했다. 종이학을 접으려고 해도 잘못 접으면 공이 될 수 있는데, 그 속에 알고리듬이 있다고 했다.

그는 어른 세대가 양자물리학적인 세계관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운명론이나 결정론이 아닌, 자신의 의지만으로도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적인 세계관으로 보면 세상은 아직 상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뭐든지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부모님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 셋을 데리고 미국에 홀로 한 학기를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평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며 “학교·학원·컴퓨터가 아이들 시간을 다 뺏어가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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